만물의 조화가 담긴 산수유 꽃의 개화 | 고규홍

 

 

봄은 빛깔로 다가온다. 회색빛을 깨고 봄을 일으키는 빛깔에는 노란색이 많다. 봄빛이 지금 나무의 품 안에서 꿈틀거린다. 아직 드러나지는 않았다. 매운바람 틈에 봄기운 스미기를 기다려야 한다. 그러나 봄을 먼저 알리려면 모두가 움츠러든 찬바람 속에서도 재우쳐야 한다.


노란 봄을 가장 서두른 건 산수유 가지 끝에 돋워 올린 꽃봉오리다. 구슬 모양을 한 갈색 껍데기의 봉오리 안에 봄의 기미가 담겼다. 천지에 봄소식을 알리려 아주 조금씩 봄빛을 키우는 중이다. 우주 천지의 조화가 담긴 꽃봉오리다.


미동도 하지 않던 견고한 꽃봉오리가 봄의 전주곡을 노래할 채비를 마쳤다. 이제 얼마 안 남았다. 조금 지나면 봄빛 머금은 봉오리가 살짝 갈라지며 틈을 보일 것이다. 겨울바람 지나기만 기다리면 된다. 하루 이틀 사흘…. 일주일쯤 지나면 지름 1센티미터도 안 되는 작은 꽃봉오리의 껍질이 벌어지고 그 안에서 노란 봄이 화들짝 피어날 것이다. 생명의 이치가 수북이 담긴 신비의 개화다.


구슬 모양의 봉오리 안에 들어있던 꽃송이들이 일제히 기지개를 켜며 바람 앞에 나선다. 아직 바람이 차지만 산수유의 봄노래는 기운차다. 꽃송이를 밀어 올린 1센티미터가 넘는 꽃자루는 도도하다. 그 끝에 몽글몽글 앙증맞게 솟아오른 꽃송이는 볼수록 신비롭다. 좁디좁은 공간을 비집고 올라온 꽃송이는 무려 마흔 송이나 된다.


꽃자루 위에 점점이 맺혔던 꽃송이들이 벌어진다. 제가끔 넉 장의 꽃잎과 바로 그 안쪽에 네 개의 수술, 삐죽 솟은 하나의 암술. 1센티미터도 채 안 되는 작은 구슬 모양의 꽃봉오리 안쪽에서 돋아난 건 마흔 개의 암술, 백육십 개의 수술, 백육십 개의 꽃잎이다. 좁디좁은 공간에서 제 모양과 빛깔을 잃지 않고 살아 올라온 꽃송이들이 경탄스럽다. 우주 만물의 생명 이치가 작은 구슬 봉오리 하나에 담겼다.


세상의 모든 문명의 이치가 자디잔 꽃 한 송이에 담겼음을 깨닫는 게 이 봄에 집어 들어야 할 생명의 화두다.


고규홍


나무칼럼리스트로 이 땅의 나무를 찾아 나무에 담긴 사람살이의 향기를 전하고 있습니다. 천리포수목원의 이사이자 인하대학교 겸임교수이기도 합니다. 《이 땅의 큰 나무》 《나무가 말하였네》 《도시의 나무 산책기》 등의 책을 냈습니다.

[출처] 샘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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