삼시세끼 안 진짜 내 생각은 얼마나 반영됐을까? 알게 모르게 우리의 입맛을 좌우하는 미디어의 영향.
아침 대용이었던 그릭 요거트, 점심에 먹은 로제 떡볶이, 저녁에 찾아갈 인스타그램 맛집까지 삼시세끼 다양한 메뉴를 ‘골라’ 먹었지만, 그 안에 진짜 내 생각이 얼마나 반영됐을까? 알게 모르게 우리의 입맛을 좌우하는 미디어의 영향을 생각해본다.
출근길 지하철에서 밤새 올라온 인스타그램 피드를 살펴본다. 사실 가까운 지인들의 근황을 확인하려던건데 피드 사이사이 끼어든 광고에 속절없이 또 눈길이 간다. 드라마틱한 비포&애프터의 다이어트 보조제 광고, 대충 찍어도 인생샷을 건질 수 있을 것 같은 핫 플레이스 모음집 등 다양한 콘텐츠가 시선을 붙들지만 가장 관심이 가며, 길게 보게 되는 피드는 결국 먹거리다. 속도감 있게 편집한 밀키트 조리법, 육즙이 줄줄 흐르는 신상 햄버거, 줄 서서 기다리는 맛집까지 제각각 다른 이유로 집중하게 되는 먹거리 콘텐츠가 가득하다.
플랫폼이 인스타그램에서 유튜브로 바뀌어도 사정은 비슷하다. 편의점 신상 컵라면 리뷰, 대패삼겹살 10인분 먹방, 시장 맛집 열 군데 탐방 등 썸네일만 봐도 흥미진진한 미식의 세계가 기다렸다는 듯 열린다. 심심해서 틀어본 TV, 오며 가며 보이는 전광판, 서점에서 본 각종 단행본이며 책들까지 우리는 그야말로 ‘먹거리 콘텐츠’의 세계 속에서 살아가고 있는 중이다. 이런 환경이 우리에게 어떤 영향을 주고 있을까?
그 메뉴, 정말 네가 골랐어?
홈쇼핑이나 라이브 방송을 보다 자기도 모르게 쓸데없는 물건을 결제했다는 지인들을 자주 본다. 저런 걸 왜 사나 싶다가도 구체적인 활용법이나 상품의 특장점을 보고 나면 어쩐지 갖고 싶어진다는 것이다. 그런데 한참 영상을 들여다볼 필요도 없이, 사진 한 컷으로 단 2초만에 구매를 결정하는 게 인간의 본능이라면?
<소비자의 뇌가 직접 말하는 광고 브랜드의 비밀>(야마다 리에이, 커뮤니케이션북스)에 따르면 그렇다. 책의 저자는 소비자가 광고를 받아들이는 과정을 분석하기 위해 몇 가지 실험을 실시했으며 그중 특정 제품을 홍보하는 신문광고를 보고 2초 만에 구매 의향을 밝힌 참가자의 비율이 40%를 넘었다고 소개했다. 결국 소비자가 대단한 주의를 기울이지 않아도 무의식적으로 광고 정보가 전달된다는 게 책의 핵심.
이런 선상에서 보자면 일상적으로 보고 듣는 수많은 콘텐츠가 크든 작든 우리의 판단을 좌우하고 있음을 짐작할 수 있다. 식생활이라고 해서 다르지 않다. 길에서 받은 전단지 한 장에 의해 당장 그날 점심 메뉴가 결정되기도 하고 밥 든든히 먹고 TV를 보다 밤 10시쯤 등장하는 치킨 광고에 또 한번 야식을 감행한다. EBS 미래교육연구소 연구위원인 최홍규 씨 역시 이 같은 상황에 문제의식을 갖고 <푸드 초이스>(지식의날개)를 펴냈다.
스트레스에는 매운 떡볶이, 야구장에서는 치맥, 11월 11일에는 빼빼로처럼 미디어가 세운 일종의 공식을 따르는 사람들에게 정말 스스로 선택해 먹는 게 맞느냐는 질문을 던진 셈이다. 먹거리를 선택하는 과정에 미디어가 끊임없이 개입하고 있으며, 그렇기 때문에 실제로 본 적도 맛본 적도 없는 새로운 먹거리를 의구심 없이 즐기고 있다는 지적은 묘한 기분을 안겨준다. 그동안 내 손으로 시킨 배달 음식과 내 발로 찾아간 맛집에 대해 복잡한 생각이 드는 순간이다.
먹방을 불허한다?
홍수처럼 쏟아지는 먹거리 콘텐츠가 우리의 인지나 사고에 생각보다 큰 영향을 주고 있음을 확인했지만 문제가 비단 ‘메뉴의 선택이 주체적이지 못하다’는 것뿐일까? 본질적인 고민은 이런 콘텐츠의 지속적인 노출이 우리의 식생활에 어떤 영향을 주느냐다. 이런 맥락에서 가장 먼저 떠오른 단어는 먹방이다.
먹방이 주는 즐거움은 분명 부인할 수 없다. 기름기 가득한 곱창, 치즈가 쭈욱 늘어나는 피자, 10봉지씩 끓이는 라면 등 죄책감에 자제했던 음식을 복스럽게 먹어주는(?) 유튜버의 모습이 큰 대리만족을 준다. 한정판이나 갓 출시된 신제품을 발 빠르게 입수해 리뷰해주는가 하면 줄을 서야만 먹어볼 수 있는 인기 맛집에 찾아가 알토란 같은 정보를 전해주기도 한다.
이런 이유로 계속해서 먹방계의 새로운 스타가 등장하지만 동전의 양면처럼 우려의 시각도 있다. 먼저 과도한 영양 섭취를 유발한다는 지적이다. 2019년 전남대 식품영양학부 정복미 교수팀은 먹방을 본 적 있는 남녀 800명을 대상으로 설문조사를 실시했다. 먹방 시청 시간이 식습관과 건강에 미치는 영향을 분석하려는 시도였는데, 예상했듯 먹방을 오래 볼수록 과체중이나 비만으로 이어질 가능성이 높았다.
연구에 따르면 주당 먹방 시청 시간이 7시간 미만인 사람보다 14시간 이상인 사람에게서 과체중, 비만이 많았으며 주당 먹방 시청이 긴 사람일수록 탄수화물과 육류의 선호도, 그리고 배달 음식 및 야식을 시켜먹는 빈도가 높았다.
그저 흥미로 봤던 먹방이 어쩌면 과식과 야식의 주범이 아닐까 싶은데 실제로 몇 년 전 보건복지부에서 폭식으로 인한 국민 건강과 비만을 우려한 나머지 먹방에 대한 가이드라인과 모니터링 계획을 내비쳐 찬반 논란을 불러일으켰다. 우리나라에서는 ‘그럴 수도 있다’로 끝났던 먹방 규제 계획이 중국에서는 현실이 되기도 했다. 중국은 올해 4월부터 시진핑 국가 주석의 뜻에 따라 ‘음식 낭비 금지법’이 시행돼 인터넷이나 TV 방송에서 먹방을 할 경우 한화로 최대 1700만원의 벌금을 부과한다.
어떻게 먹을 것인가?
요즘 세상에서 좋든 싫든 먹거리 콘텐츠에 노출되는 건 피할 수 없는 사실. 그렇다면 숱한 관계 속에서 자존감을 지키려 애쓰듯 식생활에 있어서도 나름의 기준이 필요할지 모른다. 그리고 그 기준이란 대개 자각에서부터 만들어진다. 일단 내가 보고 있는 것이 정보인지 자극인지 자각해보는 건 어떨까.
영국의 저널리스트 로잘린 카워드는 1984년 자신의 저서 <여성의 욕망(Female Desire)>에서 ‘푸드 포르노’란 단어를 처음 사용했다. 크림이 흘러내리는 빵, 기름을 잔뜩 묻힌 채 고기를 뜯는 입술 등 음식 혹은 음식을 먹는 모습을 담은 사진(혹은 영상)이 포르노처럼 자극적이라는 뜻에서 붙여진 이름이다. 레시피를 찾느라, 맛집 정보를 찾느라 음식 관련한 이미지에 접근할 순 있어도 오로지 자극만을 위한 콘텐츠는 자제하는 게 현명하다.
물론 가벼운 자극이야 즐거움도 주고 스트레스 감소에도 도움이 되지만 잦은 노출은 확실 히 과식, 폭식으로 이어질 염려가 크다. 이른바 ‘가짜 배고픔’을 유발하기가 쉽기 때문이다. 한때 103kg까지 나갔으나 다이어트에 성공해 10년째 51.5kg을 유지하고 있는 개그우먼 권미진은 최근 <유지어터 권미진의 먹으면서 빼는 다이어트 레시피>(길벗)를 출간해 체중 감량에 대한 노하우를 전했다. 역시나 가짜 배고픔으로 폭식을 하고 후회했던 경험이 담겨 있는데, 책에 따르면 입이 심심해 뭔가 먹고 싶은 가짜 배고픔이 생길 때 샤워를 하거나 방을 치우는 등 재빨리 다른 행동을 함으로써 감정의 흐름을 끊어주는 것이 도움을 준다고 한다.
음식을 고르고 먹는 행위에 과도한 의미를 부여할 것까진 없지만 입으로 들어가 피와 살로 쌓이는 음식에 대해 자각하려는 노력도 필요하다. 프랑스의 유명한 미식가 브리야 사바랭이 그러지 않았나. ‘당신이 먹는 것을 말해보라. 그러면 당신이 어떤 사람인지 말해주겠다’. 먹는 음식이 곧 나를 규정하는 한 부분이 될 수 있다니 새삼 삼각김밥이나 컵라면으로 대충 때우던 나의 한 끼가 떠올라 머쓱해진다.
쌀밥을 먹으며 땡볕에 그을었을 농민에게 감사한 마음을 가지고, 한 잔의 커피를 마시며 남미의 커피농장 노동자의 임금 문제를 생각하는 것이야말로 사회학적 상상력이요, 먹거리 시민의 자질이라는 고려대 사회학과 김철규 교수의 목소리도 음식에 대한 자각을 일깨우는 또렷한 메시지다. 이제 의지대로 한 끼를 골라볼 차례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