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미지 출처 : 영화 <아이로봇>
“콜럼버스가 지금 미 대륙에 온다면 어떨까?” 누군가에게 이런 질문을 던졌을 때 “무슨 말도 안 되는 소리를 하냐”고 타박한다면 그는 분명 ‘사람’이 맞다.
그런데 “1506년에 사망한 콜럼버스가 지금 미국에 오기는 어려우므로 답하기 곤란하지만 일단 그렇다 가정하고 이야기를 시작해보자”고 한다면 혹시 상대가 ‘인공지능’이 아닐지 의심해봐야 한다. 챗GPT(ChatGPT)로 대표되는 지금의 인공지능 수준이라면 어떤 질문에든 능청맞게 그럴싸한 답을 내놓을 수 있기 때문이다.
인공지능과 대화를 나누는 건 새로운 일은 아니다. 이제 적지 않은 기업들이 고객 상담 업무를 사람 대신 챗봇으로 대체할 만큼, 말하는 인공지능은 기술 장벽을 넘어 사회·문화적으로 자리를 잡아가고 있기 때문이다.
스마트폰의 음성 비서와 대화하는 것조차 자연스러운 세상 아닌가. 그런데 이 인공지능과의 대화가 기술적으로 다음 단계로 나아갈 채비를 하고 있다.
불을 지핀 것은 지난해 말 혜성같이 등장한 챗GPT다. 다양한 인공지능 관련 프로젝트를 오픈소스로 개발하는 오픈AI가 만든 이 프로젝트는 질문의 맥락을 읽고 상당한 수준의 정보를 정리해 하나의 완벽한 글로 만들어준다.
애초 이 챗GPT의 기반이 된 ‘GPT 프로젝트’의 시작이 딥 러닝 기술을 바탕으로 자연스러운 문장을 만들어내는 것이었다. 지금은 가장 말을 잘하는 인공지능 중 하나로 공공연하게 꼽힌다.
이미 이 GPT를 바탕으로 많은 언어 관련 프로젝트가 진행되기도 했고, 국내에서도 카카오 브레인의 KoGPT 등 GPT의 오픈소스를 바탕으로 우리 말을 이해하는 인공지능 기술이 속속 등장하고 있다.
최근에는 이 GPT 프로젝트가 3.5 버전을 기반으로 하면서 간단한 주제에 대한 글짓기나 소프트웨어 코딩을 할 수 있는 수준으로 고도화되기 시작했다.
결국 소통은 대화와 질문의 맥락을 이해하고 그 안에서 상대방이 듣고 싶어 하는 대화의 포인트를 찾아서 서술하는 과정의 반복이다. 짧은 대화를 할 수 있다면 자연스럽게 더 긴 문장을 만들 수 있고, 질문자의 의도대로 프로그래밍하는 것도 가능할 테다.
그렇다면 챗GPT의 수준은 ‘어느 정도’일까. 내일의 날씨나 지금 테슬라 주식이 얼만지 따위의 간단한 대답을 넘어 양자 컴퓨팅이나 소프트웨어 코딩, 혹은 역사적 사건, 민감한 정치적 문제까지도 막힘 없이 답변하는 ‘정도’다.
재미있는 이야기를 들려달라고 하면 허튼 농담이 아니라 제법 진지한 한 쪽짜리 소설을 내놓는다. 세상이 놀랄 만도 하다. 아니, 솔직히 말해 글을 써서 먹고사는 입장에서 등골이 서늘해지는 느낌도 든다.
챗GPT 등장 이래 인공지능 챗봇에 무엇인가를 물어보는 게 하나의 재미있는 놀잇감으로 자리 잡았다. 때로는 말도 안 되는 엉뚱한 답을 하더라도 그 역시 뉴스의 한 페이지를 장식하며 화젯거리가 된다.
상황이 이러하니 많은 사람들이 새로운 인공지능과 이야기 나누는 걸 즐기는 듯 보인다. 무엇보다 챗GPT는 질문의 맥락까지 파악해 원하는 정보를 찾아주는 것은 물론이고 적절한 가공을 더해준다.
내용의 정확도를 떠나서 앞뒤가 맞는 이야기를 늘어놓는다는 점이 사람들의 흥미를 끈다. 오픈AI가 챗GPT를 개발한 방향성 역시 여러 정보를 조합해 하나의 스토리를 완성하는 데에 있다.
챗GPT가 정보를 찾고 학습하는 창구는 인터넷이다. 데이터의 양은 무한하고 매시간 꾸준히 업데이트된다. 이는 확실히 강점이기도 하지만 동시에 인터넷의 근본적인 문제점을 고스란히 끌어안는다는 점은 치명적이다.
인터넷에는 확인되지 않은 이야기가 많고, 틀린 정보도 많기 때문이다. 사회적 문제가 되는 가짜뉴스 역시 널려 있어 결국 그 결과물인 챗GPT의 출력값에도 영향을 미친다. 따라서 학습된 각 정보의 조각은 사실 관계가 명확하지 않고, 잘못된 고리가 있다면 이를 타고 줄줄이 틀린 이야기를 능청맞게 이어갈 수 있게 된다.
현재 챗GPT의 문제로 틀린 정보를 그럴싸하게 만들어 내는 부분이 중점적으로 지목되고 있기 때문에 아마도 이 부분에 대한 개선은 빠르게 이뤄질 것이다. 이미 그에 대한 보완책이 오픈소스 커뮤니티를 통해서 다양하게 논의되고 있다.
거짓이 지속된다면 말썽이 되겠지만 우습게도 지금 챗GPT의 인기 한편에는 이 인공지능 특유의 ‘멍청함’도 한몫한다. 사람들은 똑똑한 인공지능 기술을 원하지만 동시에 지나치게 높은 수준의 인공지능에 대해서는 거부감을 갖는다.
이른바 ‘불편한 골짜기(Uncanny Valley)’다. 불편한 골짜기는 인공지능이 주는 이질감을 일컫는 말로, 기술적 용어가 아닌 심리학 용어다.
완전히 사람과 같은 수준이라면 모르고 넘어갈 수 있지만 사람과 매우 흡사한데 어딘가 묘하게 부조화한 지점에 대해 불쾌감을 느끼는 것이다.
이 불편함에는 두려움도 포함된다. 2016년 알파고가 이세돌 9단과 벌인 세기의 바둑 대국은 그동안 알고리즘 기반의 컴퓨터가 넘볼 수 없다고 생각했던 인간 바둑이란 벽을 가볍게 뛰어넘었다.
기술 발전이 놀랍다는 반응보다 인간의 한 영역이 무너졌다는 좌절감이 컸고, 이는 곧 인공지능이 또 다른 분야에서 인간을 대체할 수도 있다는 불안감으로 연결됐다. 어쩌면 사람들이 챗GPT에 호감과 흥미를 갖는 것은 챗GPT가 쏟아내는 엉뚱한 대답들이 거부감보다는 안도감을 자아내서일 것이다.
기계학습 기반의 인공지능 서비스들이 그렇듯 챗GPT의 답변은 점점 더 정확하고 정교해질 것이다. 오히려 문제는 특정 사안에 답변하는 인공지능의 편향성이다.
이는 어떤 기업도 속 시원히 풀어내지 못하는 문제다. 인공지능을 학습시키는 주체는 사람이고, 사람은 누구나 문화, 종교, 정치, 사상의 편향성을 가지기 때문이다. 이미 여러 인공지능 챗봇이 이 편향성을 바탕으로 역사 속에 퇴적된 바 있다.
사람들과 대화를 바탕으로 성장하도록 만든 마이크로소프트의 ‘테이(Tay)’는 공개되자마자 몇 시간 만에 세상의 거의 모든 폭력성과 차별, 혐오, 욕설을 배우기 시작했고, 무차별적인 악성 발언을 쏟아내는 바람에 공개된 지 16시간 만에 중단되는 상황이 벌어졌다.
20대 여성 그리고 대학생을 캐릭터로 만든 스캐터랩의 ‘이루다’가 홍역을 치렀던 이유도 가볍게 주고받는 대화의 일부에서 성적 논란, 혐오 등을 학습한 흔적이 드러났기 때문인데, 2.0 버전으로 업데이트하면서 대화를 더 엄격하게 관리하고 있다.
사실 인간형 인공지능 챗봇은 일종의 캐릭터를 표현하는 요소로, 옳고 그름을 떠나 어느 정도의 발언 수위는 허용해야 할 필요성이 있다. 사람과 마찬가지로 인공지능 역시 모두를 만족시키는 대답을 해야 할 이유가 없기 때문이다.
그러나 챗GPT는 조금 다른 책임을 가진다. 현재 챗GPT도 예민한 질문을 던지면 횡설수설하며 넘어가는 부분이 없지 않지만 답을 무조건 내놓는다는 특성 때문에 논란의 여지를 남긴다.
무엇보다 챗GPT는 보다 보편적인 역할이 요구되는 인공지능 서비스다. 성격이나 문화, 환경의 반영보다 아주 건조한 사실 중심으로 학습하고 결과물을 만들 필요가 있는 이유다.
그럼에도 모든 학습 기반 인공지능의 결과물이 그렇듯, 결국 그 편향성 역시 사람이 판단하기 마련이다. 또 인터넷 정보는 다양성이 있어 이를 완전무결한 수준으로 바로잡는 것은 어려운 일이다.
어디까지나 챗GPT는 베타 버전이고, 지속적으로 발전하는 인공지능 모델이다. 아직 편향성을 논하기보다 기술에 대한 흥미도가 높지만 점차 정교해지고 기술에 익숙해지는 시점이 오면 사회적·윤리적 부분에서 검증이 필요해질 것이다.
진짜와 가짜의 구분도 생각해볼 문제다. 챗GPT의 강점 중 하나는 글짓기다. 편지나 일기, 반성문을 쓰는 건 일도 아니다. 베끼는 수준을 넘어 세상에 없던 하나의 이야기를 만들어준다.
당장 학교 과제도 챗GPT에게 맡긴 뒤 가다듬기만 하면 될 정도다. 쓰기는 여전히 인간의 영역으로 존중될 것이라는 시각도 있지만 챗GPT를 포함해 그림, 음악 등을 만들어내는 인공지능의 결과물을 보면 그 거침없는 창의성에 혀를 내두르게 된다.
인간의 순수한 창작성에 가치를 둘지, 과정보다 뛰어난 결과물을 우선할지에 따라 창작 활동을 비롯한 다양한 분야에서의 인공지능 역할이 결정되지 않을까.
그렇다면 가장 궁금한 것이 남았다. 챗GPT가 구글을 대 체하게 될까? 인공지능의 등장은 늘 의외의 곳에서 긴장감을 만들어낸다. 구글이 챗GPT에 놀라서 경계령을 내렸다는 이야기까지 나온다.
사실상 정확성만 담보된다면 챗GPT는 일반적인 자연어 검색은 물론이고, 필요한 정보를 그대로 늘어놓는 것이 아니라 적절히 가공해서 받아들이기 쉬운 하나의 ‘콘텐츠’로 만들어준다.
구글을 비롯한 관련 서비스들로서는 충분히 긴장할 만한 상황이다. 이미 구글도 오래전부터 검색 결과를 정보로 만들어주는 ‘지식 그래프’ 서비스를 지원했지만 챗GPT는 그 수준을 뛰어넘는 결과물을 만들어낼 여지가 충분하다.
그렇다고 굳이 우리가 구글을 걱정할 필요는 없다. 구글은 이미 높은 수준의 자연어 처리 인공지능 기술을 갖고 있다. 오랜 시간 동안 전 세계로부터 수집한 방대한 정보가 구글에 색인되어 있고, 구글의 언어 처리 시스템은 지금까지도 세계의 언어를 더 정교하게 학습하고 있다.
문제는 그 기술이 얼마나 자연스럽게 다가오느냐에 있다. 구글은 지난 2018년, 전화를 걸어 사람과 대화를 나누고 음식점과 미용실을 예약하는 인공지능 서비스 ‘듀플렉스’를 내놓은 바 있다.
당시 너무도 실제 같은 전화 통화에 세상은 반가움보다는 거부감을 표했고, 이후 구글의 인공지능 서비스들은 급진적인 발전보다는 어떻게 사람 사이에 자연스럽게 어울릴지에 대해 고민했다.
챗GPT 역시 필연적으로 같은 과정을 반복할 수밖에 없다. 인공지능 기술은 모두에게 열려 있다. 그리고 그 수준은 인간이 적응하는 시간보다 빠르게 높아진다.
인공지능 기술의 결과물을 가름하는 것은 데이터의 학습량과 이를 처리하는 컴퓨팅에 달려 있다. 누구든 언젠가 성취할 기술이었고, 이 이상의 결과물은 얼마든지 나올 수 있다. 이제는 그 기술을 어떻게 쓸지에 대한 적극적인 고민과 논의가 필요한 단계다. 그리고 이는 우리 모두의 고민이 필요한 문제다.
한 가지 장담할 수 있는건, 챗GPT가 오늘날 검색 패러다임의 전환에 화두를 던졌다는 것이다. 인터넷에 있는 정보를 찾아 스스로 조합할 건지, 아니면 원하는 대로 가공된 정보를 수신할 것인지의 선택지가 던져졌다.
수십 년 동안 아무도 불만을 갖지 않던 인터넷 활용법에 머지않아 변화가 생길지도 모른다. 우리가 인터넷에서 기대하는 정보는 어떤 것인지, 변화에 따른 부작용은 어떻게 해소할 것인지. 기회가 온 만큼, 답을 더는 미뤄선 안 될 것이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