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체성과 효율성 사이에서 균형 찾기는 과연 성공적일까

마세라티의 매력은 어디에서 오는가. 헤리티지, 브랜드, 사운드, 고성능, 스타일, 이국적인 이름… 또는 이 모든 것들의 조합? 한때 그랬을지 모른다. 하지만 그 매력을 불러오던 요소들은 과연 지금 어디에서 찾을 수 있을까. 과거의 영광이란 제품 포장지에 붙은 유효기간처럼 한계가 있기 마련이다. 그 한계를 극복하기 위한 것이 타임리스 전략이고, 거기에 수반되어야 하는 것이 현재에 걸맞은 변화일 것이다. 마세라티의 위기는 바로 그런 변화가 늦었기 때문이라는 게 일반적인 분석이다.

늦긴 했어도 마세라티는 그걸 받아들였다. 허물어져가는 기둥을 바로 세우기 위해서는 대대적인 보수작업이 불가피했다. 그 첫 번째 결과물로 나온 것이 MC20이다. 모터스포츠 역사에서 영광의 모델 MC12를 다시 불러내고 그 후계자의 지위를 부여한 전략은 적합했다. 페라리 그늘에서 벗어나 독자개발 엔진을 얻고 새로 출발하는 마세라티에게 슈퍼카는 브랜드 위상을 높이기에 피할 수 없는 선택. 무엇보다 가슴 뛰게 만드는 스타일 또한 마세라티에게 실종된 매력을 찾아주는 실마리로 보였다.

변화의 다음 단계가 바로 마세라티의 새로운 SUV 모델 그레칼레다. 알파로메오 스텔비오와 같은 조르지오 플랫폼을 기반으로 하는 중형 SUV로 르반떼 아래 위치하는 마세라티 두 번째 SUV 모델이다. 바람의 이름에서 작명하는 오랜 전통은 1963년 전설적인 미스트랄과 함께 시작되어 기블리, 보라, 메락, 캄신, 그리고 르반떼로 이어졌다. 그레칼레는 강력한 지중해의 북동풍을 의미한다.

MC20의 디자인을 잇는다고는 하지만 SUV에서 눈에 띄는 강렬한 인상을 받기는 힘들다. 이는 여느 슈퍼카 브랜드의 SUV도 마찬가지. 어, 람보르기니네, 이건 베틀리군… 그런 느낌처럼 이 차도 전형적인 마세라티라는 인상 말고 별다른 감흥은 없다. 수수하고 콤팩트해 보이는 외관과 달리 길이 4850mm에 이르는 체구는 제법 큰 축에 든다. 베이스가 되는 스텔비오보다 큰 차체로 GT와 더불어 패밀리 SUV 성격도 포함한다.

쿠페 라인을 닮은 매끈한 옆모습은 1947년부터 이어져온 펜더 위 3개의 에어벤트, C-필러 뒤의 트라이던트 로고가 디자인 유산을 잇는다. 후면부에는 주지아로가 디자인했던 3200GT의 부메랑 테일라이트를 오마주했다.

그레칼레는 4기통 2.0L 300마력 마일드 하이브리드 엔진을 장착한 GT 버전과 4기통 마일드 하이브리드 330마력 엔진을 장착한 모데나, MC20 네튜노 엔진을 기반으로 하는 V6 3.0L 530마력의 고성능 트레페오 세 가지 버전으로 나온다. 마세라티 최초의 전동화 SUV 버전인 폴고레(Folgore)는 올해 하반기 출시 예정이다. 오늘 만나는 시승차는 330마력의 모데나다.

마세라티의 4기통 하이브리드 시스템은 벨트 스타터 제너레이터(BSG), 48V 배터리, e-부스터 및 DC/DC 컨버터의 네 가지 요소로 구성된다. 트윈 터보 엔진은 BSG 또는 배터리로 구동되는 e-부스터와 결합된다. 일반 모드에서는 연료소비와 성능의 균형을 맞추고 스포츠 모드에서 성능을 최대치로 끌어올린다는 설명이다. 일반 마세라티와 동일한 성능 특성에 중점을 두고 ZF제 자동 8단 변속기와 매칭했다.

변화는 실내에서 두드러진다. 사실상 변화가 늦었던 부분이 실내 인터페이스였음을 감안하면 가장 달라진 마세라티를 실감할 수 있는 부분이다. 클래식 클러스터는 변함이 없지만 중앙의 새로운 12.3인치 패널, 추가 제어 기능이 포함된 8.8인치 컴포트 패널이 새롭다. 요즘 트렌드에 익숙한 구성인데 마찬가지로 물리 버튼이 없는 점은 아쉽다. 마세라티라면 조금 다르게 해도 좋지 않았을까. 아무튼 휴대전화 충전 패드 공간 등 편의성은 상당히 좋아진 느낌이다. 도어 트림에 부분적으로 쓰인 목재 패널 등에 예전 감성이 녹아 있다. 몸을 잡아주는 시트의 자세, 소재의 질감, 바느질도 꼼꼼하다.

달리기 시작하면 조금 가볍다는 느낌이 든다. 가속은 손쉽게 이루어지지만 기대했던 만큼 묵직하게 힘을 발산하는 느낌은 들지 않는다. 가속 시 e-부스터가 힘을 보태는 트윈 터보는 눈 깜빡할 새 빠른 가속을 뒷받침한다. 0→시속 100km 가속 5.3초의 수치가 그걸 말해준다. 세찬 가속이 진행되는 동안 살아나는 특유의 엔진 사운드 또한 어김없는 마세라티임을 보여준다.

모데나 트림에서 기본 제공되는 에어 서스펜션은 65mm 범위에서 조절 가능하며, 노멀 모드 기준으로 주차 모드에서 35mm 낮아지고 오프로드 모드에서 30mm 높아진다. 스티어링 휠에 달린 주행 모드 기능은 컴포트, GT, 스포츠, 코르사, 오프로드 등 5가지. 컴포트 모드에서는 부드러운 가속과 단단함보다 경쾌한 움직임이 이어진다.

GT에 이어 스포츠 모드로 바꾸면 토크 전달이 조금씩 더 두툼해지고 더불어 차체의 무게감도 커진다. 드라이브 모드 가운데 범퍼 세팅 조절로 차의 유연성을 조절할 수도 있다. 하지만 어느 경우이든 거친 노면을 다루는 세련미는 다소 부족해 보인다. 뒷좌석은 공간이나 편의성 모두 향상된 느낌. 여기에 안락함까지 요구하면 지나친 욕심일까.

도로 환경이나 주행 기분에 따라 선택할 수 있는 주행 모드 옵션이 있다는 것은 어느 차를 막론하고 운전 재미를 더해주는 요소다. 하지만 4기통 마일드하이브리드 마세라티에서 인상적인 주행 느낌은 크게 다가오지 않았다. 어쩌면 V6 트레페오를 위해 남겨둔 영역인지 모른다. 그렇지만 동역학 부분에서는 마세라티 특유의 균형과 안정감을 확인할 수 있었다. 가속은 활기차고 방향을 잡아나가는 데 머뭇거림이 없다. 복합연비 9.8km/L를 포함하는 효율성이란 측면에서 마세라티의 새로운 변화는 우선 긍정적으로 볼 수 있겠다. 그럼에도 여전히 아쉬운 건, 1억 원을 호가하는 가격으로 이 새로운 삼지창을 손에 넣고 싶게 만드는 그 무엇이 선명하게 다가오지 않는다는 점이다.

Fact file | Maserati Grecale Modena
가격 1억3300만 원 크기(길이×너비×높이) 4850×1980×1665mm
휠베이스 2901mm 무게 1970kg 구동형식 네바퀴굴림 엔진 직렬 4기통 터보 1995cc 가솔린
최고출력 330마력/5750rpm 최대토크 45.9kg·m/2250rpm 변속기 자동 8단 최고시속 240km
0→시속 100km 가속 5.3초 연비(복합) 9.8km/L CO₂배출량 178g/km

[출처] 오토카 Autocar Korea (한국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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