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나, 둘, 셋. 친구들이 부추긴다. 나는 눈을 질끈 감고 배와 배 사이 좁은 틈으로 뛰어든다. 짧은 마찰 뒤에 몸이 가라앉는다. 소리가 없어진다. 온통 검다. 어쩌면 아직 눈을 감고 있는지도 모른다. 어딘가 부딪힌다. 배의 바닥에 닿은 걸까. 숨이 가쁘다. 팔과 다리를 파닥거리며 벗어나려 하지만 그럴수록 미끄덩한 기름 속에 갇혀버린다. 무섭고 신기하다. 

물 위에서 동생을 바라보던 언니는 속으로 숫자를 세며 동생이 떠오를 시간을 가늠한다. 동생이 유일하게 걸치고 있던 낡은 팬티가 잠시 바닷속에서 가오리처럼 유영하다가 꼬르륵 물속에 잠긴다. 아이들은 배의 건너편으로 우르르 뛰어간다. 기다린다. 동생은 물 위로 떠오르지 않는다. 배 이편에도 저편에도 보이지 않는다. 서른까지 세던 언니가 소리치며 운다. “오빠야! 오빠야! 내 동생 좀 살리도!” 육학년을 흔들며 애원한다. 물개라 불리는 육학년이 뛰어든다. 언니는 침을 꼴깍 삼킨다. 육학년이 동생의 머리채를 잡고 올라온다. 동생의 몸은 온통 기름으로 얼룩져 머리채밖에 잡을 데가 없어 보인다. 

그곳은 내가 유년을 보낸 시장통 앞 작은 부두다. 가끔 경찰관이 아이들이 벗어놓은 옷을 가지고 파출소로 가버린다. 빨가벗거나 겨우 팬티를 걸친, 위험 따위는 안중에도 없던 아이들이 비로소 긴장한다. 그 이전에 어른들이 백 번쯤 으름장을 놓았으나 눈도 끔쩍하지 않던 아이들이 바닥에 맨발로 바닷물 도장을 찍으며 패잔병처럼 슬프게 걷는다. 언니가 운다. 나도 따라 운다. 파출소 바닥에 꿇어앉아 반성한다. 지나가는 어른들이 머리를 쥐어박는다. 다시는 배 밑으로 기어다니지 않겠다 다짐하고서야 겨우 옷을 돌려받는다. 

그러나 사나흘 후면 누군가 옷을 벗어 던지고 다시 바다로 뛰어든다. 아이들은 며칠 전의 치욕 따위는 까맣게 잊고 줄줄이 뛰어든다. 배와 배 사이 굴속 같은 바다를 지나 큰 바다로 나간다. 헤엄을 치다가 지치면 던지고 놀던 풋사과를 한입 베어 문다. 상큼한 사과 맛보다 짭짤한 바다 맛이 먼저 입속으로 들이닥친다. 바다를 품은 풋사과와 금지된 수영의 맛은 강렬했다. 나는 거기서 여름의 맛을 배웠고 휴가의 맛을 익혔다. 시퍼런 바닷물은 그때만 따뜻하게 우리를 허락했고, 시원한 물속에서 비로소 뜨거운 햇살은 즐길 만했다. 그 여름의 날들은 지리멸렬한 보통의 날이 아니었다. 

나는 그곳에서 조금 더 자랐다. 여름이 되면 전국에서 사람들이 몰려들었다. 사람들은 그것을 피서라고 했다. 어떤 이들은 바캉스라고도 했다. 나는 어쩐지 그 낯선 단어들이 좋았다. 통영 주변에는 바캉스에 적합한 크고 작은 섬들이 많았지만 그중에서도 비진도(比珍島)는 단연 독보적이었다. 섬으로 가는 유람선에서 서울 사람들은 바다를 구경했고, 나는 바다를 구경하는 서울 사람을 구경했다. 고향을 벗어나본 적이 거의 없었다. 단 한 번도 경상남도를 벗어나지 못했다. 여름 휴가철이 되면 고향 밖 세상이 내게로 왔다. 고급스러운 옷차림과 달콤한 말투, 세련된 매너, 상큼한 웃음. 그들이 내뿜는 공기마저 내 것과는 달라 보였다. 바이브라고 해야 할까, 아우라라고 해야 할까. 나는 그것들을 동경하며 세상 밖을 상상했다. 꿈꾸었다. 질투했다. 

사람을 살살 녹이는 저 말투를 좀 보라지. 억세고 거친 이 동네 것과는 차원이 달라. 저 오빠는 틀림없이 대학생일 거야. 어휴, 저 하얀 얼굴 좀 봐. 저기 저 기다란 손가락은 또 어떻고. 농사를 짓거나 물고기 잡는 일은 해본 적이 없겠지. 여기서는 아무리 애를 써도 잡히지 않는 FM 채널로 팝송을 듣고, 명동에서 구두를 맞춰 신고, 서울이 한눈에 보이는 높은 타워가 있다는 남산을 오르겠지. 저 여자 좀 보라지. 빠글빠글하지 않고 굽슬굽슬한 컬이 어깨까지 내려왔어. 저건 미스코리아 대회 때나 보던 헤어스타일이잖아. 저 짧은 스커트를 미니스커트라고 하는 걸까? 동네 아줌마들 사이에서는 발목까지 내려오는 월남치마가 유행인데. 저렇게 검은 안경을 쓰고도 앞이 보인다고? 검은 안경이 아니고 선글라스라고 했지. 저 사람들의 세상은 도대체 얼마나 아름다운 걸까. 

가끔 텔레비전이나 영화에서 보던 유명인을 봤다. 주말 드라마에 나오는 여배우 A도 본 적이 있다. 그녀는 배 난간의 객실 창에 기대서서 바다를 바라보고 있었다. 리본이 달린 챙 넓은 모자를 쓰고 하얀 들꽃이 잔뜩 프린트된 연녹색 투피스 차림이었다. 그녀는 서울 사람들 속에서도 독보적으로 아름다웠다. 오랜 후에야 몸을 한 바퀴 둘러 옆으로 묶은 그녀의 치마가 ‘랩스커트’라는 걸 알았지만 그 때까지는 난생처음 보는 옷이었다. 어제도 티브이에서 본 드라마 속의 주인공이 치맛자락을 휘날리며 내 눈앞에 있다니. 꿈은 아닐까? 

나는 객실을 가로질러 그녀 가까이 기어갔다. 치마는 열린 창을 드나들며 여전히 휘날리고 있었다. 창 안으로 들어온 치마를 살짝 잡고 엄지와 검지로 그것을 비벼보았다. 부드럽지만 견고하고 가볍지만 경박하지 않은 질감이었다. 나는 그것이 도시의 멋일 것이라고 믿었다. 내가 원하는 세상 밖의 멋일 거라고 확신했다. 

섬에 화려한 조명을 단 해변 나이트가 생겼다. 밴드가 연주하면 가수가 노래를 불렀다. 그들의 연주는 초등학교 합주부와는 비교할 수 없이 강렬했다. 디스코 두 곡이 끝나면 블루스 한 곡이 나왔다. 음악은 모래사장의 임시 천막을 뚫고 바다 끝으로 퍼졌다. 사람들은 모래를 튀기며 격렬하게 춤을 추었다. 그보다 더 많은 사람이 밤의 해변에 앉아 술을 마시고 웃고 즐겼다. 나는 바다를 향해 다리를 뻗고 모래 위에 누웠다. 바다의 끝단이 찰랑찰랑 몸에 닿았다. 하얀 포말을 일으키며 끊임없이 밀려오는 파도에는 바다 저편의 말들이 실려있었다. 어쩌면 그 여름의 낮과 밤이 나를 세상 밖으로 끄집어냈는지도 모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