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페라 아리아를 노래하는 성악가나 대중음악을 부르는 가수들처럼 가사를 부쳐 메시지를 전달하는 방식에 비해 악기 소리만으로 작곡가의 의도를 정확히 관객에게 전달한다는 것은 사실상 불가능하다고 생각한다. 이런 불편한 진실을 비발디, 바흐, 모차르트, 베토벤 등 당대 최고의 작곡가들도 알고 있었기에 그들은 표제음악을 탄생시켰다. 곡에 표제(혹은 제목)를 부쳐 관객들이 상상할 수 있는 어느 정도의 가이드라인을 만들어준 것이다. 화가이자 건축가였던 친구의 이른 죽음을 애도하기 위해 그 친구의 전시회를 개최하고 그 주제를 음악으로 표현한 곡 ‘전람회의 그림’은 표제음악의 중심에 있는 러시아 작곡가 무소르그스키의 작품이었다.

현대의 사람들은 보다 빠르고 명확한 메시지 전달 방식을 선호한다. 클래식보다 대중음악, 연극보다 드라마, 오페라보다 뮤지컬이 대세인 이유가 여기에 있다. 그렇다고 대중음악, 드라마, 뮤지컬을 폄훼하고 싶은 마음은 전혀 없다. 단지 순수 예술인들이 배워야 할 덕목 중 하나가 관객을 이해하는 것이라는 말이다. 콘트라베이스라는 악기에 대한 선입견 중 하나는, 무대 제일 안쪽에서 솔로 악기들을 반주하고, 2미터에 달하는 육중한 몸매로 뒤뚱거리느라 빠른 속주가 불가능한 조연급 악기라는 것이다. 전부는 아니지만 어느 정도는 맞다고 할 수 있겠다. 그런 인식에 맞서 자기주관과 개성이 뚜렷한 베이시스트들이 ‘더 이상 조연이 아닌 주연이 되어 무대의 중앙에 서 보자’라는 뜻으로 만든 앙상블이 콘트라베이스로만 구성된 ‘어바웃콘트라바쓰앙상블’이다. 그리고 이들의 첫 번째 친관객적 작품이 ‘어바웃콘트라바쓰의 문드림콘서트’이다. 이 작품은 여러 장르의 예술가들이 협업한 복합장르인데, 각 분야의 고유한 스토리텔링 방식으로 관객이 상상할 수 있는 가이드라인을 만들어주고 스스로 판타지를 꿈꿀 수 있도록 기획했다.

사실 이 작품을 무대에 올리기까지는 많은 어려움이 있었다. 새로운 젊은 팬의 확보를 위해 예술의 전당이나 세종문화회관이 아닌 대학로로 진출하고자 했으나 연극이 아닌 클래식 공연이라는 이유로 대관이 거절되었다가 복합장르라는 것을 설명하고 나서야 다른 연극단체가 대관료를 내지 않을 경우라는 조건으로 결국 최종허가를 받아냈다. 예술인은 자존심으로 먹고산다는데, 자존심이 무너지는 순간이었다. 하지만 새로운 팬층의 확보를 위해 포기할 수 없었다. 오히려 이를 전화위복 삼아 ‘대학로≠연극, 대학로=클래식’이라는 모토로 플래시몹, SNS, 크라우드펀딩 등 여러 홍보 방법을 동원해 이틀간의 공연이 매진되는 사건을 만들어냈고, 작품성을 인정받아 한국문화예술위원회의 우수공연지원사업에 선정되는 쾌거를 이루었다. 관객이 작품을 접하고 스스로 상상하도록 방향을 잡아주는 친절한 공연이 성공할 수 있다는 신념을 갖게 된 공연이었다.

2014년 8월 16일, 또 다른 친절한 공연을 예술의 전당에서 선보이려고 한다. 공연명은 ‘스펙트럼’이다. 스펙트럼은 빛이 분광기를 통해 나뉘는 현상을 말한다. 세상의 빛은 우리의 눈으로 알아볼 수 있는 가시광선과, 존재하고 역할하고 있으나 우리 눈에 보이지 않는 감마선, X선, 자외선, 적외선 등 많은 빛으로 구성되어 있다. 삶도 마찬가지이다. 우리는 세상의 보고 싶은 것, 가지고 싶은 것들만 보는 이기적이고 왜곡된 시야를 갖고 있다. 우리가 외면하는 세상 어딘가에도 그들만의 철학과 질서가 있음에도, 우리는 스스로가 만들어놓은 잣대로 감히 그들을 평가하고는 한다. 대단히 위험하고 이기적인 발상이다. ‘스펙트럼’은 우리의 삶 속에서 철저히 외면당하고 있는 현실들을 기억하고 이해하자는 주제의 공연이다. 음악과 연극, 미술 분야의 작가들이 협업하여 어떻게 스토리텔링을 할 수 있을지 기대가 된다.

“예술은 세상을 바꿀 수 있다”라는 말이 있다.

<해와 바람>이라는 이솝우화에서, 나그네의 외투를 벗길 수 있었던 것은 결국 강한 바람이 아니라 마음을 움직이는 따뜻한 햇볕이었다. 우리가 사는 세상에서의 예술의 역할은 강압적이지 않은 가장 자연스럽고 아름다운 방법으로 세상을 바꾸는 것이다.

 

올여름, 어바웃콘트라바쓰앙상블이 세상을 향해 어떻게 스펙트럼을 외치고 관객들의 마음을 움직일지 기대가 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