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행기는 긴 밤을 거슬러 낯선 땅에 나를 내려놓았다. 오후에 출발했는데 당일 오전에 도착하는 것은 날짜변경선이 부리는 마법이다. 생애 세 번째 해외여행이었고 북미대륙은 처음이었다. 전 세계 오로라의 수도라고 불리는 캐나다 북쪽의 작은 도시 옐로나이프로 떠나는 것은 쉽지 않은 일이었다. 2009년의 나는 회사원이었고, 12월은 회사원에게는 가장 몸을 사려야 하는 시기다. 1년의 실적을 평가해서 진급과 성과급 같은 것들을 결정하니까.
천체사진을 20년 가까이 찍다 보니 전문가로 알려지게 되었고, ‘오로라 원정대’ 행사에서 사진 강사로 참여해 달라는 요청을 받게 된 것이다. 그러니까 공짜, 심지어 돈을 받고 가게 된 것이 팀장과 싸워가면서 휴가를 얻어냈던 결정적인 이유였다. 공짜라면 양잿물도 먹는다는데 심지어 오로라 아닌가.
오로라를 처음 본 사람은 오로라가 한 눈에 다 들어오지도 않을 만큼 밤하늘 전체를 가득 채운 규모에 놀란다. 이제까지 사진으로 본 모습은 밤하늘 전체에서 네모나게 잘라낸 작은 부분일 뿐이다. 또한 사진과 다른 것은 정지한 것이 아닌 살아 움직이는 모습이다. 오로라는 수시로 모습을 바꾸어간다. 북미 원주민들은 신의 영혼이 하늘에서 춤을 추면서 지상의 사람들을 내려다보는 거라고 생각했다.
오로라가 밝아질수록 그 움직임도 점점 격렬해지는데, 우주에서 날아온 입자들이 만드는 오로라의 결이 하늘에 걸어놓은 피아노 건반이 춤추는 것처럼 보이는 것을 오로라 댄싱이라고 한다. 이때의 빠르기는 베토벤 월광 소나타의 3악장 정도다.
이렇게 너울거리던 오로라가 어느 순간 갑자기 폭발하듯 밝아지며 빛이 밤하늘을 가득 채우며 휘몰아치는 절정의 순간이 오는데, 이를 오로라 브레이크업(break-up) 또는 오로라 폭풍이라고 부른다. 그 빛은 바닥의 눈 알갱이 하나하나를 형광빛으로 물들이며 반짝이고, 그 떨림은 이내 가슴과 공명하여 어디서부터 올라온 것인지 알 수 없는 벅찬 감동이 밀려온다. 카타르시스. 인간이 자연에서 느낄 수 있는 최고의 경이로움이다. 
오로라는 대개 옅은 초록색인데 오로라 폭풍 단계가 되면 여러 가지 색이 나타난다. 특히 가장 밝은 부분에서 선명한 핑크빛이 도는데, 이 색을 보면 졸업해도 된다. 하지만 이런 강렬한 모습은 흔히 볼 수 있는 것은 아니다. 처음 방문했던 2009년에는 나도 보지 못했다. 하지만 오로라 스톰 대신 본 것이 있으니, 바로 같이 갔던 사람들이다. 월급쟁이는 나 밖에 없고 다들 사진가, 만화가, 블로거 등, 자기 하고 싶은 것을 하고 사는 사람들이었다.
“저렇게도 살 수 있구나.”
내 안에 잠자고 있던 자유로운 영혼이 깨어났다. 하지만 두려웠다. 월급이 안 나오는 삶을 생각해본 적이 없었기 때문이다. 회사원의 삶이 행복하지 않았기 때문에 대안을 찾아 수많은 고민을 했지만 주저했던 것은 월급 없이는 삶 자체가 없을 수도 있다는 걱정 때문이었다. 그런데 지금 생각해보면 무척 고맙게도 회사에서 기회를 만들어줬다. 12월에 일주일 휴가를 냈기로 어찌나 사람을 괴롭게 하는지, 결국 목에 걸려 있던 말을 내뱉고 말았다.
“회사 그만 두겠습니다.”
말실수였다면 다음날 바로 수그리고 들어가야 하겠지만, 그날 밤이 되어 자리에 눕자 정말 마음이 편안해지는 것이 느껴졌다. ‘할 수 있다’라는 느낌이 왔다. 그렇게 12월 초에 오로라 여행을 하고, 12월 중순에 사표를 내고, 12월 말일자로 새장 문을 열고 나와 사진가가 되었다. 아무리 뭔가를 열심히 고민하고 준비하더라도 결국 실행에 옮기는 힘은 용기에서 나온다는 걸 그때 깨달았다.
다행히 월급 없이도 굶지 않고 이제까지 올 수 있었다. 회사원으로 살 때만큼 돈을 많이 벌지는 못하지만 내 삶을 오롯이 내가 결정하는 행복한 삶이다. 이제까지 평생의 결정 중 두 번째로 잘한 일이었다(첫 번째는 대부분의 공처가(?)들이 말하듯이 결혼이다).
인생은 수많은 우연들이 겹쳐서 필연이 된다. 오로라를 보러가지 않았다면 지금의 천체사진가가 될 수 있었을까 궁금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