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십 대의 마지막은, 그저 삼십 대의 시작이라는 걸. 그리고 아직 다가오지 않은 삼십 대는 생각보다 더 멋지고 찬란하고, 빛날지도 모른다는 것.”


그때의 나는 이십 대의 마지막을 앞두고 있었다. 여자들의 심리가 보통 그러하듯 서른, 이라는 나이대 앞에 왠지 초조했고, 이유를 알 수 없는 불안에 시달리고 있었다. 이제 다시는 돌아오지 않을 나의 이십 대. 돌아보니, 치열하게 입시에 매달려 겨우 대학에 들어가서는 쉴 새 없이 공부를 하고, 꿈을 따라 정신없이 달려간 일들을 제외하고 딱히 기억에 남을 만한 일이 없었다. 모험을 모르는 소심한 모범생의 말로란 이토록 시시한 것인가! 이대로 이십 대의 끝에 마침표를 찍어버린다면, 분명 후회할 텐데. 영화 같은 사랑이나 소설 같은 사건들이 제대로 벌어진 적 없는 이십 대라니.
그토록 찬란하고 아름다워야만 한다는 이 시절에 나는 매일 한숨을 쉬었다. 그렇게 우울감에 시달리던 어느 날 문득 어떤 결심이 섰고, 통장을 살폈다. 액수는 턱없이 초라했다. 과연 이 돈으로 무얼 할 수 있을까. 한참을 생각하던 중 머릿속에 반짝 하나 떠오르는 단어가 있었다. ‘여행.’ 나는, 단숨에 여행을 떠나기로 마음먹었다. 
먼저 마음이 맞는 친구를 찾아 한 달 간 계획을 짰고, 비용을 충당하기 위해 일을(작사와, 칼럼, 연재 등등) 늘렸다. 가지고 있던 악기를 팔았고, 돈이 될 만한 일이라면 뭐든지 했다. 그리고 마지막으로, 다니던 작은 회사에 사표를 냈다. 그렇게 모은 돈을 가지고, 영국으로 떠나 스페인에서 돌아오는 비행기 표를 샀다. 약 90일간의 유럽여행. 내 이십 대의 마지막, 첫 번째 여행은 그렇게 시작되었다. 
왜 수많은 일들 중 하필 여행을 선택했을까. 지금 생각해보면 그때 내린 나의 결정은 그저 마음이 시킨 어떤 홀림, 같은 거였다는 생각이 든다. 신기하게도 부족한 돈이나, 낯선 환경에 대한 두려움, 돌아와서의 내 자리, 같은 것들에 대한 두려움이 그리 겁나지 않았으니까. 그때 내 앞에 있던 두려움은, 그런 것들이 아니라, 이대로 나의 이십 대가 저물어버릴 시간이 얼마 남지 않았다는 그 잔혹한 사실에 있었는지도 몰랐다. 나중에 나이 들어 뒤를 돌아보았을 때, 제대로 된 도전 혹은 이야기할 만한 스토리가 존재하지 않는 이십 대를 두고 쉬게 될 한숨의 무게 같은 것들 말이다. 
그렇게 시작된 나의 첫 배낭여행은, 참 가난했다. 저렴한 숙소를 골라 다녔고, 식사는 하루에 두 끼 정도로만 대충 때우며 발 곳곳에 물집이 잡히고 터지고를 반복할 때까지 대부분 걸어서 이동을 해야 하는 고달픈 시간들이었다. 첫 여행에서의 그 모든 경험은 당연히 나에게 모두 “처음 겪어보는 일”들이었다. 그러나 나는 그 모든 고생과 고됨이 좋았다. 하루하루가 축제 같았다. 내 스스로 만든 서른 전의 전야제 같은 느낌이었다고나 할까.
여행지에서 만나는 모든 사람들의 눈동자에서 발견한 그 처음의 설렘을 나는 아직도 잊지 못한다. 그렇게 90일의 여행을 마치고 돌아왔을 때, 나는 너무나 많이 달라져있었다. 내 안에는 나 스스로와 세상을 바라보는 또 하나의 눈이 생겼고, 그 눈의 깊이는 여행을 떠나기 전보다 깊고 넓었다. 내가 나아가야 할 시간과 공간이 하나의 우주만큼 더 넓어진 기분이랄까. 그리고 알게 되었다. 무언가의 마지막은, 또 다른 무언가의 시작이 되기도 한다는 사실. 이십 대의 마지막은, 그저 삼십 대의 시작이라는 걸. 그리고 아직 다가오지 않은 삼십 대는 생각보다 더 멋지고 찬란하고, 빛날지도 모른다는 것. 
여행을 하며 자꾸만 쏟아져 나오는 마음속의 이야기들을 기록해 두었다. 여행에서 돌아와 그 느낌들을 하나하나 정리하다 보니, 이걸 책으로 내면 어떨까, 하는 생각에 이르렀다. 그렇게 예상 못한 나의 첫 번째 책을 위한 도전이 시작 시작되었다. 원고들을 정리하고 출판사를 찾아다니고, 우여곡절 끝에 나오게 된 나의 첫 번째 책은 반응이 제법 좋았다. 작가, 라는 타이틀을 달게 해준 그 첫 번째 책 덕분에 나는 지금껏 이렇게 글을 쓰고 있다.
이십 대의 마지막을 위해 떠났던 여행은 새로운 삼십대의 첫 시작을 장식해 주었다. 무언가 마지막이라는 생각이 들 때, 당장의 내일이 보이지 않을 때, 나는 그 시절 떠났던 나의 첫 번째 배낭여행을 생각한다. 그 첫 번째 여행을 만들기 위해 가져야 했던 용기와 도전과 또 버려야 했던 두려움들을 말이다. 삼십 대 후반에 와 있는 지금 나는 다시금 이 삼십 대의 마지막을 어떻게 장식해볼지, 생각해보고 있는 중이다. 막연했던 이십 대의 마지막 그때처럼, 어떤 새로운 도전이 기다리고 있을지 설렌다. 모든 것의 마지막엔 새로운 시작이, 그 처음이 맞물려 있음을 알기에 이 기다림은 무척 달콤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