딸아이와의 추억을 담은 향수가 있습니다. 제 작업 중에 가장 아끼는 작업입니다. 우리 집 뒷산은 제법 운치가 있습니다. 풍광이 좋고 계곡이 좋아 종종 산책하러 갑니다. 그날은 밤하늘에 별이 유난히 총총한 날이었습니다. 4살 된 딸아이에게 자신도 잘 알지 못하는 별자리 이야기를 해줬더니 딸아이는 이렇게 물었습니다.
“아빠 채으니 별은 어디 있어? 채으니 별은 뭐야?”
순간, 어린 시절에는 저 역시 내 별이 저 하늘에 떠 있다고 믿었던 것이 생각났습니다.
‘우리는 모두 각자의 별이 있다고 믿었을 텐데 어느새 모두 잊고 살아가고 있구나. 아이가 자랐을 때는 자기 별이 있다는 것을 잊지 않게 해줄 수 있는 작업을 해보자’라는 생각으로 조향한 향수입니다.
별의 향기를 표현하고 싶었지만, 그것을 상상한다는 것은 말처럼 쉽지 않아서 그 순간의 향기를 담았습니다. 밤바람의 시원함, 계곡에서 올라오던 물의 냄새, 숲의 냄새, 흙의 냄새. 향수의 이름은 ‘STAR OVERHEAD’로 누구나 머리 위에는 자기의 별이 떠 있다는 의미로 지은 이름입니다. 향수병에는 딸아이가 처음으로 그렸던 별 그림이 프린팅되어 있습니다. 이는 가장 소중한 작업으로 고객들에게 항상 소개하고 있습니다. 이것에 담긴 이야기를 들으면 다들 재미있어합니다. 그동안 향수는 주로 패션 액세서리나 화장품의 관점에서 소개됐는데, 이야기를 담아내고 있다는 점이 신선하게 다가옵니다.
사실 모든 향수는 조향사들의 이야기와 감성이 녹아있는 예술적 창작물입니다. 감정의 표현은 물론 서사와 미학적 관점까지 담아내고 있습니다. 향수는 후각을 통해 감상하는 한 편의 시로 비유해도 과언이 아닙니다. 안타깝게도 그동안 우리나라의 향수시장은 외국의 유명 브랜드 향수를 대량으로 수입, 유통하는 수준에 머물러 있다 보니 정작 조향사들이 향을 통해서 하고 싶었던 감동을 제대로 전달하지 못한 면이 있습니다.
서른에 향수를 만들기 시작하여 올해로 마흔이니 이 일도 이제 10년이 되었습니다. 유난히 힘든 이십 대를 보낸 제게 향수는 위안이었고, 선물이었으며, 문화생활이자 낯설고 아름다운 세계로 떠나는 여행이었습니다. 특별한 날에 향수를 한 병 사면, 짧게는 며칠, 길게는 몇 달 동안 그것으로 행복했습니다. 인터넷을 통해 누가 만든 향수인지, 어떤 이야기가 담겨있는지 찾아보면 아름다운 풍경과 멋진 사람들, 그리운 추억들을 만날 수 있었습니다. 저에게 있어서 향수는 정말 예술이었던 것이지요.
10년 전 직장을 그만두고 향수를 만들겠다는 저의 꿈은 많은 사람에게 허황되게 들렸습니다. 한국의 로컬 브랜드가 전혀 없던 시기로, 향수는 브랜드여야 하고 외국제품이 아니면 상품성이 없다는 인식이 일반적이었기 때문입니다. 만약 제가 사업아이템으로써 향수를 생각했다면 시작조차 안 했을 테지만, 당시의 저에게는 오직 향수를 통해 느낀 위안과 감동을 다른 사람과 나누고 싶다는 생각뿐이었습니다. 때문에 시장 상황이나 사업성 등은 같은 것들은 고려의 대상이 아니었습니다. 브랜드를 목적으로 하지 않았기에 다른 사람들과 조금은 달리 생각할 수 있었던 것입니다.
향수에 진정성을 담아 내가 믿는 바를 증명해 나간다면 그 결과로 만들어진 향수는 브랜드가 될 수 있다고 생각했습니다. 정확히는 화장품 회사를 운영하고 있는데, 스스로 ‘PERFUMERY’라고 정의하고 있습니다. 퍼퓨머리란 후각이 어떻게 작용하고, 향기란 무엇이며, 이러한 것들이 우리 삶에 어떤 가치를 갖고 어떻게 행복하게 할 수 있는지를 고민하고 연구하는 후각 전문가 집단입니다. 단순히 코에 좋은 냄새를 만들지 않습니다. 사람마다 후각적인 경험은 제각각이고 경험에서 만들어지는 후각 감수성은 다양합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많은 사람들이 공감할만한 지점을 짚어낸다거나 향에 대한 새로운 경험, 새로운 관념을 만들어주는 것이 조향사들의 일입니다.
좋아하는 일을 직업으로 삼아 살아가는 것은 행복한 일입니다. 또한, 아직 불모지와 다름없는 한국의 향수 시장을 문화의 영역, 예술의 영역으로 만들겠다는 직업적 소명 역시 보람찬 일입니다. 그러나 무엇보다 ‘향기’를 다루는 일이라서 행복합니다. 향기가 세상을 더욱 생생하고 인생을 풍요롭게 만들 수 있다고 믿고 증명하려고 노력하고 있습니다. 애써 기억하지 않아도 그립고, 따뜻한 느낌이 든다면 아마도 향기 때문일지도 모릅니다. 그저 향기를 만드는 일을 하는 사람으로서 이 짧은 글을 통해 당신의 삶에 향기가 더해지기를 바랍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