더불어 걷는 길

함께 웃어야 진짜 행복하지!

주지훈 󰠛 ㈜제니튼 대표이사, 서울삼성치과 대표원장

“5억짜리 버스를 만든 치과의사 주지훈”은 tvN 방송「리틀빅 히어로」에 소개된 24번째 주인공이다. ‘각자의 자리에서 남몰래 선행을 실천하는 시민영웅들을 소개한다.’는 시사교양프로그램에서 ‘5억짜리 버스 자랑’이라니? 그러나 주지훈 원장은 5억이든 10억이든 그만한 돈을 버스에 쏟을만한 가치가 충분했다고 한다. 형편이 어려워 제때 치과 진료를 받지 못하여 건강을 해치는 아이들을 찾아 달리고, 호탕하게 뜻을 모은 30여 명의 동지가 함께 달리는 버스라 그렇다. 그야말로 5억짜리 버스 굴리는 진짜 영웅들 이야기다.

한강 바람이 사방으로 통하는 시원한 동네에 리무진버스 한 대가 아침부터 서 있다. ‘해피 스마일 치과 버스’라고 우리나라 내로라하는 치과의사들이 굴리는 버스다. 대표를 맡고 있는 주지훈 원장(43세)을 만나러 간 날은 탈북청소년을 위한 봉사활동이 한창이었다. 다소 긴장한 듯 버스에 오르는 아이들을 반가이 맞는 의사들과 스태프의 모습이 형, 누나처럼 스스럼없어 보였다.

돈이면 뭐든 되는 세상이라지만, 아무리 돈이 많아도 다스릴 뜻이 없으면 독이 될 수 있는 게 돈이다. 주 원장은 돈이 본래의 가치를 발휘할 수 있도록 우리 사회에 흘려보낼 길을 찾았다. 독식하는 부와 성공이 무슨 의미가 있을까? 그 끝은 어디일까? 돈이 모이고 쌓일수록 커져가는 질문에 응대한 길이었다.

돈만 많이 벌면 성공한 겁니까?

어렸을 때부터 제발 돈 걱정 없이 살아보는 게 소원이었다. 등록금을 못 내서 선생님께 불려가기도 자주 불려 다녔는데, 그럴수록 이를 악물고 공부하는 수밖에 없었다. 고3때 우연히 치과의사가 디제이로 방송하는 라디오를 듣다가 문득 치과의사가 되면 돈을 많이 벌 수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고, 그때부터 목표는 단 한 가지 치과의사가 되는 것이었다. 그렇게 돈을 많이 벌어야 한다는 일념으로 치열하게 달려왔다.

그런데 참 이상한 게 원하던 치과의사가 되었고 돈도 많이 벌었으니 행복해야 하지 않나? 분명 성공을 이뤘다고 생각했는데 막다른 벽에 부딪힌 듯 갑갑한 느낌을 지울 수가 없었다. 어떤 때는 환자가 돈으로 보이는 끔찍한 날들도 있었다. 온종일 병원에 갇혀 환자 입속만 들여다보노라면 내가 지금 무엇을 위해 이러고 있는 건지 알 수가 없었다. 아무리 돈을 많이 벌고 원하는 자리에 도달했어도 거기에 나 혼자 있으면 무슨 소용 있을까? 진짜 성공을 이룬 게 아니라는 결론에 이르렀다.

사람이 중심이 되는 의료

그러다 2009년 서울대학교 치과대학 출신의 의사들이 모여 ‘국민을 위한 치과 의사가 되겠다.’는 뜻으로 ㈜제니튼을 설립했다. 내 가족이 안심하고 쓸 수 있는 제품을 만들겠다는 철학으로 가급적 화학약품을 쓰지 않고 천연 성분 위주로 구강 건강 제품을 만들고 있다. 그리고 몇몇 동료들과 기업의 사회적 책임에 대한 이야기를 진지하게 나누다 봉사 활동을 해보자는 의견이 모아졌다. 적자로 경영이 어려운 상황이었지만, 모두 기다렸다는 듯이 흔쾌히 응했고 바로 무엇을 하면 좋을까 궁리를 했다. 각자 자기 병원으로 어려운 이들을 불러서 무료로 치료를 해주면 어떨까? 이런저런 의견이 나왔지만, 지속적으로 할 수 있으려면 이동버스로 우리가 직접 찾아가는 편이 낫겠다는 쪽으로 흘렀다. 여기까지는 참 좋았는데, 막상 일을 시작하려니 진료를 도와줄 위생사, 이동을 원활하게 해줄 운전사, 치료 중 항시 대기할 의료장비 기술자, 일정을 관리하고 진행할 관리자 등 인력 수급 문제가 만만찮은데다, 엄청난 장비를 싣고 다닐 버스를 어떻게 마련할 것이며 움직일 때마다 들어가는 비용은 무엇으로 감당할 수 있을지 머리가 까마득해졌다. 게다가 일이 자꾸 커지니까 ‘이렇게까지 할 필요가 있느냐’는 소리가 슬슬 나왔고 소소한 갈등도 없지 않았다. 그럼에도 다행인 것은 거기서 멈추지 않았다는 것이다. 좀 더 효율적이고 지속가능한 방안들을 함께 모색하니까 속속 길이 열렸다. 돈보다 사람을 주목할 때 문제를 통쾌하게 뚫고나갈 방법들이 찾아지나보다.

발문- 좀 더 효율적이고 지속가능한 방안들을 함께 모색하니까 속속 길이 열렸다. 돈보다 사람을 주목할 때 문제를 통쾌하게 뚫고나갈 방법들이 찾아지나보다

솔직히 우리 자신을 위한 일이지

치과버스 운영 계획서를 들고 후원기업을 찾아 나선 결과, SK플래닛의 도움으로 버스를 구입할 수 있었고 이동식 치과 병원으로 개조까지 할 수 있었다. 고가의 의료 장비는 우리 의사들이 십시일반 주머니를 털어 마련하여 2011년 ‘해피 스마일 버스’를 완성했다. 이듬해 3월부터 본격적으로 봉사를 시작해서 올해까지 약 1,000여 명의 다문화가정이나 저소득층 아이들, 탈북청소년들을 진료했다. 아이들은 이가 상하면 잘 씹지 못하고, 잘 씹지 못하면 영양 섭취가 제대로 안 되어 성장 발육에 문제가 생길 수 있다. 특히 앞니가 썩으면 남들 앞에 서는 걸 꺼리고 심하게는 대인기피증까지 올 수 있다. 어려운 환경을 당장 벗어나게 해줄 수는 없지만 적어도 아이들만큼은 웃을 때 활짝 웃을 수 있도록 도와주고 싶다. 비싼 치료비 때문에 진료를 받지 못하는 아이들을 찾아가 미소 짓게 만들어주는 일이 우리가 찾은 행복이다.

우리 일의 특성상 갇힌 공간에서 하루 종일 보내는데, 한 달에 두세 번 바깥에 나와 바람도 쐬고, 사람들과 짬 내서 이야기도 나누고, 가끔 야외에서 시켜 먹는 짜장면 맛도 괜찮다. 이제 으레 해왔던 일처럼 여겨져 거창하게 봉사 한다 어쩐다는 생각은 들지 않는다. 우리끼리 하는 소리지만, 남을 위한 봉사라는 게 솔직히 따지고 보면 우리 자신을 위한 일이 아닌가! 그만큼 그 속에서 얻는 감동과 보람, 만족이 크기 때문이다. 또한 다양한 색깔의 사람들이 제색을 잃지 않으면서 하나의 목적을 위해 똘똘 뭉치니 풍요로운 삶의 방식이라는 게 이런 것이 아닐까 싶다.

은혜를 베풀어주어야 치료할 수 있어

다문화가정 아이들 치료가 끝나면, 연신 고개를 숙이며 서툰 한국말로 고맙다는 인사를 반복하는 외국인 어머니들을 만난다. 말도 안 통하는 타국에 와서 어떤 고초를 겪고 사는지 다는 몰라도 그들의 표정과 아이의 치아 상태를 보면 짐작할 수 있어서 안타까울 때가 많다. 그래도 저리 고마워해주니 휴일 반납하고 다니는 보람을 느끼며 앞으로 더 잘해야지 마음을 다잡는다.

함께 활동하고 있는 한 여선생님은 아무리 어린 환자라도 어떻게 치료를 진행할 건지 계속 설명하고 동의를 구한다고 한다. “너를 괴롭히는 충치벌레를 꺼낼 건데, 벌레가 널 깨물면 약간 아플 수 있어.”라면서 어느 정도 아플지 손등을 살짝 꼬집어 견딜만하다고 알려주면, 아이들이 마음을 열고 은혜를 베풀어 준다는 것이다. 그제야 치료를 마음 놓고 진행할 수 있다고 했다. 그녀의 말이 ‘우린 모두 서로에게 은혜를 베풀고 살며, 바꾸어 말하면 늘 은혜를 받으며 산다.’는 뜻으로 들렸다. 우리가 이런 마음가짐으로 서로를 대할 수 있다면 얼마나 좋을까! 치과 진료 과정이란 게 이미 짜인 틀에서 크게 벗어나지 않는다. 다만 우리가 어떤 마음으로 환자를 대하느냐가 무엇보다 큰 차이일 것이다.

따뜻한 도움을 한 번이라도 받아본 아이들이 따뜻한 세상을 만들어갈 것이다. 도움 한번 받지 못하고 자란 아이들과는 분명 다른 세상을 그려 가리라. ‘한 번도 도움이란 걸 받아본 적 없다.’는 아이가 자라서 어떤 세상을 만들어갈까? 상상만 해도 숨이 콱 막힌다. 그러니 할 수 있는 한 많은 아이들을 찾아가 따뜻한 손길을 내밀어 주어야겠다.

발문 - 우린 모두 서로에게 은혜를 베풀고 살며, 바꾸어 말하면 늘 은혜를 받으며 산다

마지막으로, 주지훈 원장에게 쉬는 날도 없이 근무하고 봉사하러 다니려면 하루 24시간이 모자랄 것 같다고 했다. “누군가 시간을 잘 쓰고 싶으면 남을 위해 써보라고 하더군요. 자기만 위해 시간을 쓰니까 더 바쁘고 시간에 �i기며 산다는 겁니다. 그 말대로 남을 위해 시간을 써보니 훨씬 여유가 생겼어요. 가족과 있을 때는 가족에게 집중하고 환자와 있을 때는 환자에게 집중하는 겁니다. 또 피곤하면 적절히 쉬어주고 운동하고 그러면 회복이 잘 되고요.” 자기 안일만 추구하며 마땅히 져야할 책임은 내동댕이치는 세태에, 타인의 필요를 돌아보며 채우고자 애쓰는 이들을 만나니 잠시나마 마음이 시원해졌다. 취재 글 김문영 사진 김승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