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태산이 변산으로 간 까닭은?

취재. 노태형 편집인

# 장면 1.
기미년 독립운동이 불같이 일어난 해에는 유난히 일제의 탄압이 심했다.
소태산도 예외는 아니었다. 경찰서로 끌려가 이런저런 고초를 당하고 나니, 그 수모가 말이 아니었다. 나라도 나라지만, 만 생령의 안위가 더 걱정이었다. 천재지변보다 더 무서운 게 사람의 짓거리니 어찌 두렵지 않은가. 소태산은 떠날 채비를 한다. “내가 잠시 자리를 비워야 할 것 같으니 자네들이 뒷일을 잘 챙겨주소.” 그렇게 방언공사 일을 마치고 내변산으로 들어갔다.
그러길 5년, 금방 돌아올 것 같았던 스승은 소식이 없고…. 그 깊은 산속에서 무얼 하는지. 아마 누군가 갑갑증이 났던 모양이다.
“세상이 위급한데 왜 세월만 죽이세요?”
“……”
“세상으로 나가시죠.”
“모르는 소리, 난 지금 큰 그물을 짜고 있다.”
“그게 무슨 말씀이세요?”
“태평양 물고기를 잡으려면 큰 그물을 짜야지, 몽둥이로 때려서 몇 마리나 잡겠느냐.”
사은사요와 삼학팔조로 짜여진 은혜의 그물. 옛 선진들은 그 그물 사용법을 제대로 배워 물고기도 꽤 많이 잡고 부유한 살림을 차곡차곡 장만했다. 하지만, 시대가 변하고 세상이 바뀌면서 사람들의 마음이 태만해지기 시작했다. 물고기 잡을 욕심보다 잡아오는 물고기를 차지하는 것에 더 관심을 보이고, 그물이 찢어져도 모두 남 탓으로 돌리며 무관심했다. 그런 세월이 제법 흐르다 보니 그물 사용법은 아예 잊어버렸고, 찢어진 그물을 깁는 일도 서로 미루기가 일쑤다. 하지만 그물의 상속권 주장에는 결코 물러서는 법이 없다.

# 장면 2.
내변산 일대에 한바탕 소낙비가 쏟아진다.
이 산 저 산을 타고 내린 비가 봉래구곡으로 모여들어 앞서거니 뒤서거니 흙탕물을 일구며 걸음을 재촉한다. ‘좀 천천히, 천천히.’ 그 아우성도 얼마 지나지 않아 잠잠해진다. 다시 안정을 되찾은 봉래곡. 천년 바위의 시름이 깊다. “어찌 저리들 서두르는지. 그래봐야 다시 그 바다인 걸.”
수많은 세월을 그곳에 섰지만 물소리가 똑같은 적은 한 번도 없다. 어떤 물은 성질이 급해 콸콸콸 흘러가는가 하면, 어떤 물은 간사해 촬촬촬 거리고, 어떤 물은 소심해 졸졸졸 거리는가 하면, 어떤 물은 기운이 넘쳐 철철철 거리며 흘러가고, 또 어떤 물은 다 안다는 듯 빙긋 웃고 간다.
천년 바위가 조용히 읊조린다.
‘무무역무무(無無亦無無)요 비비역비비(非非亦非非)이구나.’
없고 없고 또 없고 없음이요, 아니고 아니요 또 아니고 아니다.
“이 뜻을 알겠는가?”
“네. 하고 하고 또 하고 하면 되고, 놀고 놀고 또 놀고 놀면 안 된다는 말씀이시지요.”
“궁구하고 또 궁구하고 그렇게 공부하란 소리지. 그렇게 공부해야 깨친다는 소리야.”
공부하지 않으면 천 번 만 번 억만 번을 혁신해도 그냥 진흙탕 속일 뿐이다.

# 장면 3.
익히 알고 있는 이야기 한 토막.
실상사로 불공하러 가는 노부부 이야기는 원불교에서 가장 널리 회자되는 이야기다. 절 부처님에게 불공을 드릴 것이 아니라, 며느리 부처님에게 직접 불공을 함으로써 효부로 탈바꿈하게 하는 새 불공법이다. 곧, ‘세상 만물 모두가 부처님이니 불공하듯 정성을 다하면 성공 못할 일이 없다’는 게 원불교의 가르침이다.
하지만, 지금 세상에서 이것은 참 귀하고 귀한 일이 되었다. 너무나 똑똑해진 현대인들, 혹은 종교인들마저 자기 피해 보는 일이라면 손톱만한 일이라도 극구 사양한다. 또한 공부를 오래 한 사람일수록 모든 사물이 부처라는 공경심을 가지기보다, ‘자기 부처’ 모시기에만 급급하다.
서로서로 ‘부처 대우 받기’만을 고집하니 원망심이 생기고 믿음이 희미해진다. 그래서 걱정이다.

[출처] 월간 원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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