클릭! 이 사람 _ 오늘도, 내일도 _ 김도희

클릭! 이 사람

오늘도, 내일도

김도희, 변호사·방송인

타인의 아픔과 상처에 공감하는 것을 막는 가장 큰 장애물은 ‘세상에서 내가 가장 힘들고 아프다’라는 생각이다. 내 마음이 만신창이일 때, 다른 사람은 보이지 않는다. 따뜻한 응원의 말도 진심 어린 위로의 말도 싸늘하게 얼어버린 마음에 가닿지 못한다.

시작부터 좌절의 늪에 빠지는 사람은 없다. 애쓰고 노력하다 보면 사람들의 무관심한 태도를 바꿀 수 있을 거라는 희망으로 부딪쳤다. 지상파 방송국이 3명의 아나운서에게 퇴직금을 지급하지 않으려고 소송까지 하고 있다는 사실, 비정규직을 상대로 한 횡포, 갑질을 알리기 위해 할 수 있는 모든 노력을 다했다. 동료 2명이 퇴직금을 받지 못했다는 소식을 들었던 2017년 노동법 책을 뒤적이기 시작했고, 앞으로 닥쳐올 소송을 준비하기 위해 2018년 로스쿨에 진학했다. 재학 중 국정감사에 참고인 신분으로 출석해 방송국의 비정규직에 대한 차별에 대해 발언했고, 국민청원에 글을 올리기도 했다. 그러나 달라지는 것은 아무것도 없었다.

커뮤니티에 글을 쓰면 ‘정치를 하고 싶어서 저러나’라는 섣부른 오해의 댓글에 상처받았고, ‘애초에 정규직을 했어야지. 모르고 간 것도 아니고’라는 비아냥 섞인 글을 마주할 때면 어디서부터 설명해야 할지 막막했다. ‘무늬만 프리랜서’이고 전속직 계약서를 쓰고 회사에 소속되어 활동했는데도 프리랜서는 돈을 많이 번다는 선입견을 가진 사람들로부터 ‘프리랜서가 무슨 노동자 타령이냐?’라는 질타를 받기도 했다.

“어차피 못 이기는 싸움이다”라며 회사 측의 입장만을 대변하는 근로감독관, “합의하지 않고 버틴다고 원하는 결과가 나올 것 같냐”라며 다그치는 판사를 상대하면서 개인이 지상파 방송국을 상대로 싸우는 일이 얼마나 힘든 일인지 깨달았다. 애초에 체급이 맞지 않는 싸움이었기에 1,266일의 싸움이 1심도 2심도 승소로 끝났음에도 내 몸과 마음은 폐허 그 자체였다.

극심한 소송 스트레스로 건강을 크게 잃을 뻔한 위기를 두 번이나 넘겨야 했다. 6개 병원을 찾아갔지만 원인 불명이라는 소견을 받았던 안면 통증으로 한 달을 울며 잠들었고, 항소심 결과가 나올 즈음에는 목에 불룩한 혹이 잡혀 조직 검사를 하기도 했다. 엄청난 양의 공부를 해내야 하는데, 소송까지 함께 진행해야 했던 나는 한 차례 변호사 시험에 불합격하는 아픔도 받아들여야 했다.

얼어붙은 마음을 녹인 건, 어느 독립 PD로부터 걸려온 전화였다. 얼굴도 모르고 이름도 처음 듣는 분이 “너무 늦게 알아서, 혼자 싸우게 해서 정말 미안해요”라고 말하는데, 나는 결국 꺼이꺼이 목 놓아 울어버렸다. 함께 프로그램을 만들며 힘이 되어주었던 그리운 동료들이 떠올랐다. “우리는 직장인이기 전에 언론인이잖아요”라는 그 한마디를 내가 정말 듣고 싶어 했다는 사실도 알게 되었다. “많이 외로웠죠?”라며 함께 울먹이는 그 목소리를 들은 그 순간, 나는 더 이상 혼자가 아니었다.

원망하는 마음이 커서 온 세상이 미울 때는 나를 응원하는 목소리가 들리지 않았다. 그러나 누군가는 묵묵히 나를 지지하고 응원하고 있었음을 차츰 알게 되었다. “용기 내주어 고맙다”라며 마음 다해 지지해 준 사람들의 그 온기 덕분에 끝나지 않을 것만 같았던 혹독한 4년을 버텨낼 수 있었다.

변호사가 된 나는 인권침해 예방 교육과 성희롱 성폭력 예방 교육 강연을 종종 한다. 힘들어하는 누군가에게 위로와 용기를 줄 수 있는 사람이 되고 싶지만, 아직은 의욕만 앞설 뿐이다. 이유 없이 당해야만 했던 부당한 일에 침묵하지 않고 끝까지 목소리 내겠다는 다짐은 여전히 현재진행형이다. 말할 수 있는 한, 부조리한 현실을 계속 알릴 것이다. 그리고 강한 사람만 싸우는 것은 아니라고, ‘싸운 사람은 그전까지는 싸우지 않던 사람이었음’을 기억해 달라고 힘주어 말한다. 오늘도, 내일도 나는 할 수 있는 걸 해나갈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