재미난 手作 _ 양모로 그린 그림일기 _ 성정남

재미난 手作

양모로 그린 그림일기

성정남, 펠트 공예 작가·디자이너

물감 대신 양모로 그려보기로 했다. 솜사탕처럼 포근한 양모! 한 아름 가득 안아도 솜털처럼 가볍다. 손으로 풀어보면 먼지처럼 흩어지지만, 강하게 힘주어 당기면 오히려 끊어지지 않는 양모! 아이러니한 양모의 이런 매력은 우리의 인생과 너무도 닮아있다. 그래서 인생을 담는 일기를 양모로 그린다는 것은 더욱 흥미롭게 다가왔다.

제주 한 달 살이. 듣기만 해도 설레는 버킷리스트가 나에게도 있었다. 내 인생 40년을 되돌아보고 앞날을 계획하기 위한 시간이 절실하게 필요했기 때문이다. 그래서 작업량이 가장 많은 시즌임에도 불구하고 용감하게 제주행을 택했다.

제주에서의 일상은 내게 신선한 자극과 활력을 주었다. 어느 날 우연히 야자나무 분위기의 처음 보는 나무를 만났다.

“안녕, 나무야! 너 참 재미있게 생겼다.”

그 나무가 너무 반가워 나는 말을 걸고 있었다.

“네 이름 츄츄츄 나무 어때? 이 이름 잘 어울릴 것 같은데.”

마치 여행에서 새로운 친구를 만난 것처럼 신이 난 나는 츄츄츄 나무에게 말을 걸며 어느새 이렇게 약속을 하고 있었다.

“내 작품에 너를 담아 볼게.”

그 순간 엄청 들떠 있었고, 빨리 작품에 담고 싶어 손과 마음이 간질거리고 설레었다. 그 어느 여름보다 뜨겁고 강렬했던 제주 한 달 살이었다.

그 후 작업실에 돌아와 바로 양모로 그림일기 작업을 시작했다. 만 39세 나이 제한이 있는 전시회 기회가 있었는데, 접수 마감일은 내 생일 하루 전이었고 운명적인 마감일 덕분에 내 인생 3번째 개인전 기회를 얻었다.

지난 1회, 2회 개인전에서는 헤드피스(깃털과 리본 등으로 장식한 화려한 머리 장식, 로열 웨딩에서 사용되는 머리 장식)를 선보였고, 국내에서는 흔치 않은 전시였기에 큰 관심을 받았다. 이번 3회 개인전 <양모로 그린 그림일기> 역시 많은 이들로부터 새로운 시도라는 호평을 받았다. 덧붙여 동화적인 포근함과 따뜻한 색감에 감동했다는 감상평이 가장 많았다.

이번 전시의 첫 번째 대표작은 제주에서 만난 츄츄츄 나무. 작품명은 <안녕! 나무야>. 그날 나무를 처음 만났을 때의 감정을 내 손끝을 타고 양모의 솜털 사이사이에 오롯이 끼워 넣었다. 그날 내가 본 츄츄츄 나무가 강렬하면서도 평온했던 것처럼 나도 내 몸의 긴장과 욕심이 나무에 베이지 않도록 조심하였다. 그리고 양모의 솜사탕 같은 느낌이 작품을 마주하는 이들을 포근하고 달콤하게 감싸주길 바라는 마음이었다.

두 번째 대표작은 <별이 쏟아지던 날>이다. 지난가을 깊은 산속에서 맞이한 밤하늘은 크고 빛나는 별들이 온 하늘에 빼곡했다. 온몸으로 별빛을 맞으며 그 밤하늘이 아까워 잠들지 못한 밤이었다. 별도 하늘도 올려다볼 여유도 없이 사는 이들에게 그날 밤 그 별빛을 나누고 싶었다. 평소 내가 좋아하는 고흐 작품의 별처럼 나는 노란 별빛 양모를 말아 밤하늘에 별들을 달았다.

위의 두 작품 외에도 꽃밭과 하늘, 눈 내리는 날을 담은 나의 그림일기들은 이번 전시를 통해 많은 이들에게 소개되었다. 신기하게도 관람객들은 내가 담고자 했던 모든 것들을 그대로 느끼며 온전히 감상했다. 심지어 작품에 드러내지 않은 부분까지 읽어내어 작가인 나를 놀라게 했다.

이렇듯 나는 호시탐탐 내가 좋아하는 일을 계속 찾아낸다. 왜냐하면 내가 좋아하는 일을 할 때 나도 행복하고 다른 이들도 행복해진다고 확신하기 때문이다. 자신의 선택을 고민하는 이들에게 이렇게 응원하고 싶다. 가장 가슴 뛰고 신나게 할 수 있는 것을 선택하라고 말이다. 조금 둘러 가는 듯 보여도 분명 최고의 인생이 될 것이다. 어쩌면 이것이 예술가들이 예술 하는 이유가 아닐까. 나의 그림일기가 오늘도 평범한 하루를 살아 내는 모든 이들에게 설레는 응원의 선물이 되기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