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 코닝 박물관에 전시된 베로네세 화병(Veronese Vase)의 첫인상을 잊을 수가 없다. 적당히 부풀어 오른 상부와 그것을 지탱하고 있는 중간 장식, 그리고 넓게 펼쳐진 바닥 면까지, 안정적인 비례감에서 오는 단순한 조형미는 그간에 마주했던 그 어떤 오브제보다 인상적이었다. 

베로네세 화병은 16세기의 이탈리아 화가 파올로 베로네세(Paolo Veronese, 1528~1588)의 성화 <The Annunciation of the Virgin> 속에 존재하던 화병이다. 20세기 초 이탈리아의 디자인 회사가 이 그림 속의 화병을 실물로 제작했고, 화가의 이름을 따서 베로네세 화병으로 명명하게 되었다. 사실 16세기의 유물이 존재하지 않아서 실제로 존재했던 것인지 화가의 상상으로 그려진 화병인지에 대한 의문이 여전히 남아있다. 유리공예를 10년 이상 공부했던 당시의 나에게도 다분히 흥미로운 이야기가 아닐 수 없었다. 기술적인 문제로 만들지 못했을까? 아니면 만들지 않았을까? 처음에는 단순한 호기심과 질문들로 베로네세 화병을 만들어 보고 싶었지만, 이런 호기심들은 점차 새로운 작업을 위한 충분한 동기 부여가 되었다.

유리 블로잉(Glass Blowing) 기법은 1,200℃ 이상에서 녹은 액화 상태의 유리에 긴 파이프로 입김을 불어 넣어 기물을 제작하는 오래된 유리 공예 기법의 하나이다. 열을 가하고 다시 식히고, 입김을 불어 넣는 반복적인 과정에서 하나의 작품이 완성된다. 유리는 온도에 상당히 민감한 재료이며 뜨거운 유리는 상온에 노출되면 급격히 온도가 낮아지면서 쉽게 깨지기도 한다. 이렇듯 예민한 재료이다 보니 마지막까지 긴장의 끈을 놓을 수도 없고, 작업이 한번 시작되면 완성될 때까지 멈출 수도 없다. 작업 후에는 육체적 스트레스보다 정신적인 스트레스가 훨씬 크다.

나의 작업은 장식적이고 화려하며 고난도의 기법들을 사용하는 이탈리아 베네치안 스타일에 기반을 두고 있다. 유리공예에 처음 매료된 것도 베네치안(Venetian) 기법으로 만든 와인 가블렛(Goblet)을 본 이후였다. 와인을 즐기거나 딱히 관심도 없었을 때였지만, 처음 본 수공예 와인 잔에는 뭔지 모를 이끌림이 있었다. 마치 중세 시대 어딘가에 존재했을 법한 잔을 마주한 느낌이랄까. 몇 번을 들었다 놓는 반복적인 관찰 속에서 내가 고전적인 작업에 관심이 많다는 것도 처음 알았던 것 같다.

하지만 작업을 만들어 가는 그 과정은 생각했던 만큼 우아하거나 아름답지도 않았고, 만족스럽지도 않았다. 잘 포기가 되지 않는 성격과 해결 못 한 숙제를 한가득 품고 있는 듯한 답답함 때문에 오랜 시간을 뜨거운 유리와 실랑이 하곤 했었다. 무엇보다 섬세한 장식과 얇은 두께를 중요시하는 베네치안 기법은 무척이나 까다롭고 신경 써야 하는 부분이 많다. 잠깐의 실수가 작업의 성패를 좌우할 정도로 까다로우며 그만큼 오랜 시간의 연구와 연습의 과정이 필요했다. 단시간에 잘할 수 없는 것이 당연했음에도 불구하고 미련스럽게 붙잡고 있었던 이런 무모함이 지금의 나를 유리공예가로 살게 하고 있는지도 모르겠다. 사실 지금도 만족스럽지 않은 순간들이 무척이나 많으니 틀린 말은 아닐 것이다.

나는 복잡하고 어려운 주제로 작업하는 작가가 아니다. 단지 아름다움을 좋아하고 그 아름다운 것들을 만드는 과정을 즐긴다. 때로는 새로운 것을 만들기도 하고, 때로는 고전에서 아름다움을 찾기도 한다. 옛것에 관한 탐구는 또 다른 것을 만드는 밑거름이 되고, 고전에 대한 재해석은 개인적인 이야기를 담는 과정이 되기도 한다. 과장, 확대 그리고 왜곡과 같은 변주의 과정들을 통해서 자신의 경험과 이야기를 작품 속에 담아 본다. 무형의 유리는 나의 반복된 입김과 손길에 의해 지금껏 그래왔듯이 또 하나의 유형의 오브제로 탄생될 것이다.

[출처] 월간에세이 Essa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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