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림을 그리는 것도, 글을 쓰는 것도 모두 작업하는 사람의 감정이 고스란히 내비친다. 내가 우울한 마음으로 그림을 그리다 보면 보는 사람도 같은 감정을 느끼게 하는 그림을 그리는 게 더 쉬울 수밖에 없다. 물론 그때의 우울한 감정으로 그려낸 그림이 보는 누군가에게는 취향으로 다가갈 수도 있지만, 나는 내 그림을 보는 사람들이 따뜻하다는 평을 남겨주길 바라고 그렇게 기억에 남기를 바란다.

그러기 위해서는 내 감정을 잘 통제해야 했기 때문에 습관처럼 노력하는 것들이 있다. 우선은 입꼬리를 항상 긴장시키고 있는 것이다. 나는 어릴 적부터 늘 입꼬리가 내려가 있어서 울상이라는 말을 많이 들었다. 그렇다고 처진 입꼬리를 위해 노력할 만큼 내 얼굴에서 중요한 부분이라고는 생각하지 않고 살았다.

하지만 내 얼굴에서 중요한 부분이라고는 생각하지 않고 살았기 때문인지 노력하지 않은 내 얼굴은 길을 지나다 통유리에 비친 평범한 모습도 우울한 표정이었고, 그저 손을 씻으러 들어간 화장실에서도 사연 있어 보이는 여자의 어두운 모습이었다. 내 눈에도 그렇게 보이는 내 모습이 내가 아닌 다른 사람들한테는 얼마나 더 사연 있어 보일까. 그래서 그 못난 버릇을 고쳐보기로 했고, 입꼬리를 자의적인 힘으로 올려 스스로 버릇을 들이는 것이 중요한 포인트였기에 아쉽지만 입꼬리 시술이라는 의학적 힘을 빌릴 수는 없었다.

정말 신기하게도 외모를 고치기 위한 노력이 내면적인 면까지 변화하는 데 큰 도움을 주었다. 알고 보니 ‘안면 피드백 가설(Facial feedback hypothesis)’이라는 이론이 있는데, 우리의 뇌는 가짜 웃음과 진짜 웃음을 구별하지 못하기 때문에 입 꼬리를 올리고 광대를 올려 근육을 자극해 주면 뇌는 우리가 웃고 있다고 인지하고 행복해지는 호르몬인 세로토닌을 분비한다고 한다.

그런 의미에서 조금은 멍청해서 귀여운 우리의 뇌를 속이기 위해 나는 항상 작업하다가도 무의식적으로 입꼬리가 내려가 무표정이 됐다는 것을 인지하는 순간, 얼른 다시 입꼬리를 올려주는 노력을 하고 있다. 그다음의 노력은 미워하는 마음보다 고마운 마음을 갖기 위한 노력이다. 살아가다 보니 상처만 줬던 사람, 고마움만 줬던 사람보다 고마움도 주고 상처도 줬던 사람이 더 많다는 것을 알게 됐다.

내 경우를 예로 들어 보면 이렇다. 중학교 때 급식실에 문제가 생겨 한참 도시락을 싸서 다녀야 하던 때가 있었는데, 가정상의 이유로 넉넉하지 못한 도시락을 싸 들고 다니던 나를 위해 자기 반찬을 내어 주고 다른 친구들과 함께 도시락을 먹을 수 있도록 도와줄 만큼 착하고 친한 친구가 있었다. 그 친구와의 추억은 중학교 시절의 기분 좋은 기억으로 남아있다. 그런데 아이러니하게도 같은 고등학교에 갔던 그 친구는 나를 조금 많이 괴롭혔다. 그 친구의 괴롭힘으로 인해 나는 학교에 가기 싫을 정도로 힘든 시간을 보내야만 했는데, 그래서인지 성인이 되어서도 가끔은 트라우마로 기억되곤 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나는 그 친구와 즐거웠던 시절의 추억만 기억하기 위해 노력하고, 그 친구를 위해 기도한다. 그 친구만을 위한 기도가 아닌 나와 함께였던 모든 사람을 위해. 비록 내게 상처를 줬던 사람일지라도 나는 그 상처를 기억하는 사람이 아닌 따뜻했던 순간을 기억하기 위해 기도한다. 그들 모두가 편안한 하루가 되기를, 그리고 혹시 나도 모르는 순간 누군가에게 상처를 줬다면 그 상처를 용서받을 수 있는 기회가 오기를 매일 기도한다. 이로써 내 마음에는 미움이 사라지고, 편안한 마음이 가득 채워지고 있다.

[출처] 월간에세이 Essa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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