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생각해 보면 모든 물감은 주어진 사각형의 화면 안에서 생을 마친다. 회화는 화면 바깥에서 존재할 수 없다. 반면 이 작업은 화면의 바깥을 부단히 모색하는 동시에 그 접점에서, 경계에서 사는 물감, 회화의 존재를 보여준다. 중앙과 측면, 중심과 모서리 모두가 회화적 영역으로 다루어지고 있다. … 나로서는 프레임을 따라 흘러가는 물감들이 멈춰선 긴장된 그 자리가 무엇보다도 가장 매력적인 부분이라는 생각이다. 모서리에서 또 다른 생을 만들어나가는 회화의 의지!” 

- 미술평론가 박영택 교수의 서문 中

나이를 먹어간다는 것은 감정의 흔들림이 줄어들고, 그 자리에 마음의 근육이 붙어가는 것이 아닐까 생각한다. 하지만 작가라는 이름으로 살아가는 것은 시간이 갈수록 더 어려운 것 같다. 여러 한계에 부딪치면서 마치 벽을 마주한 듯한 어려움을 느끼곤 한다. 어떻게 헤쳐 나가야 할까 무력감에 지치는 경우도 많다.

며칠이라는 짧은 아트페어를 위해 수많은 시간을 고민하고, 캔버스에 그리고 지우기를 반복해야 함에도 정작 페어에서 주목을 받기란 쉽지 않은 일이다. 사람들의 관심은 주류에 있고, 관심을 받지 못하는 작가들의 작품은 주변부와 구석을 맴돌 수밖에 없다. 페어장은 마치 총성 없는 전쟁터와도 같다. 그렇게 성과 없이, 주목받지 못한 채 페어를 마치고 나면 몸은 너덜너덜해진다. 몸져눕기도 한다. 때로는 나를 갉아먹는 듯한 이 작업을 그만둘까 하는 생각도 여러 번 했었다.

그렇게 누워있다가도 어느 순간 눈을 떠보면 나도 모르게 작업에 임하고 있는 나를 만나게 된다. 대부분의 작가는 중심과 주류에서 주목받고 관심을 받는 것이 바람이겠지만, 사실은 그렇지 못하다. 나도 마찬가지였다. 내가 있는 곳은 주변부이고 구석이었다.

그러나 내가 있는 곳이 주변부이고 구석이므로, 그곳이 오히려 중심이 되어야 하는 것이 아닐까. 주변부를 배회하던 어느 날 떠오른 생각이었다. 왜 그림은 벽의 중앙에 걸려야만 하는 것일까. 구석에 작품이 걸려서 그곳이 중심이 되고, 벽 중앙이 여백이 될 수는 없는 것일까. 캔버스 정면이 아니라, 캔버스 옆면과 밑면이 중심이 될 수는 없는 것일까. 그것이 출발점이 되었다. 나의 눈길은 자연스럽게 화폭보다 작품의 측면과 주변부로 이어졌고, 내 작업의 주인공은 화면 중앙이 아닌 측면의 주변부가 되었다.

중심에서 구석으로 움직인 나의 시선은 구석이라는 공간의 경계를 지나 그 바깥으로 더 확장되었다. 레진과 함께 섞인 물감들은 지구의 중력이라는 물리력에 따라 아래로 흘러 내려갔다. 물감들은 프레임의 경계에 머물러 꽃을 피우기도 했고, 프레임을 떠나서 새로운 세상인 바닥으로 떨어져 아름다운 흔적을 만들었다. 캔버스의 끝은 그림의 끝이 아니었다. 경계가 확장되고 무너지는 순간, 이제 구석은 더 이상 구석이 아니었다. 그렇게 주변부로 소외받았던 구석은 이제 중심을 지나 프레임을 넘어 새로운 세계로 나아가는 그의 여정을 보여주고 있다. 보이지 않는 곳, 관심을 받지 못한 곳, 주변부와 구석에서 출발한 나의 고민은 그 여정을 따라 지금도 계속되고 있다.

*1973년생, 홍익대학교 미술대학원 회화과 석사 졸업, 갤러리 이주, 갤러리 나우 등 개인전 18회, Kiaf, 화랑미술제, 아트부산, 컨텍스트 마이애미, 스콥 바젤 등 단체전 및 아트페어 250여 회, 국립현대미술관 소장(2016, 2022).

[출처] 월간에세이 Essa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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